AI 에이전트 시대의 블록체인 (온체인 결제, 탈중앙성, 기계경제)
저는 한동안 "AI는 주식이고, 코인은 끝났다"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엔비디아와 반도체 ETF 이야기만 들렸고,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은 조롱 섞인 말이 더 많았거든요. 실제로 저도 고점 대비 60% 빠진 자산을 들고 있는 게 심리적으로 너무 버거워서, 한때 디지털 자산 비중을 줄이고 전통 자산 쪽으로 옮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혹시 지금 암호화폐 가격 약세가 단순한 하락이 아니라, 거대한 변화 직전의 일시적 현상은 아닐까요?
AI 에이전트는 왜 기존 금융 시스템을 쓸 수 없을까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AI한테 그냥 내 신용카드 정보 등록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간단한 온라인 업무를 돌려본 적이 있는데, 결제·API 사용료·데이터 접근 권한 문제 때문에 결국 제 계정과 카드가 필요했거든요. 기계가 완전히 자율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려면 결제 인프라 자체가 달라야 한다는 걸 그때 체감했습니다.
AI 에이전트(AI Agent)란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고 요약하는 챗봇을 넘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심지어 결제까지 처리하는 자율적 경제 주체를 뜻합니다. 기존 챗봇이 비서였다면, 에이전트는 대리인인 셈이죠. 문제는 이 에이전트들이 전통 금융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신분 인증입니다. AI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발급한 법적 신분도, 고유한 주민등록번호도 없습니다. 삼성페이나 애플페이에 카드를 등록하려고 해도 본인 인증 문자를 받을 핸드폰조차 없죠.
그런데 블록체인 지갑은 신원 인증 없이도 단 한 줄의 코드만으로 몇 초 만에 생성됩니다. 이더리움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은행 허락도, 복잡한 서류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온전히 스스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지갑이 생기는 거죠. 저는 이 구조적 차이가 단순한 기술적 편의를 넘어서,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문제와 직결된다고 봅니다(출처: 이더리움 재단).
탈중앙성이 AI에게 생존 보증서인 이유
만약 AI 에이전트가 구글 클라우드나 아마존 웹서비스 같은 중앙화된 서버 위에서 작동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용자를 위해 24시간 주식 투자를 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돈을 벌어오던 에이전트가, 어느 날 갑자기 아마존의 내부 정책 변경으로 계정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이 AI 프로그램의 활동은 우리 회사 이익에 반한다"는 한 줄 통보로 말이죠. 그 순간 에이전트는 삭제되거나 작동이 멈춥니다.
반면 이더리움은 탈중앙성(Decentralization)이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탈중앙성이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시스템을 독점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전 세계 수만 대의 컴퓨터 노드에 분산되어 운영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주인이 없는 글로벌 슈퍼컴퓨터인 셈입니다. 구글 CEO나 미국 대통령이라 해도 마음대로 끄거나 켤 수 없고, 특정 거래를 검열하거나 막을 수도 없습니다. AI 에이전트에게 이 탈중앙성은 "그 누구도 나를 죽이거나 나의 경제 활동을 막을 수 없다"는 생존 보증 수표와 같습니다.
물론 이 주장에도 반론이 있습니다. 대규모 AI 서비스는 속도·비용·규제 준수 측면에서 프라이빗 체인이나 기존 금융 인프라를 선택할 가능성도 충분하니까요. 온체인 수수료와 확장성 문제는 AI의 초고빈도 마이크로결제 수요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자동화 프로그램을 돌릴 때도 결국 중앙 플랫폼의 정책 변경이나 API 제한 때문에 막힌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으려면 탈중앙 인프라가 필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AI와 블록체인이 실제로 만나는 지점
이런 이야기가 단순한 미래학자의 가설이 아니라는 증거는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오픈AI는 EVM 벤치(EVM Bench)라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EVM은 이더리움 가상 머신(Ethereum Virtual Machine)의 약자로,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핵심 작동 원리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AI가 블록체인 언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다루는지를 공개적으로 테스트한 것입니다.
실험 내용은 이렇습니다. AI에게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의 다양한 금융 계약 코드를 보여주고, 거기서 취약점을 찾아내 돈을 빼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최신 AI 모델은 무려 72%의 성공률로 이 복잡한 작업을 완수했습니다. 실제로 온체인 해킹을 해낸 거죠. 이는 AI가 이더리움 코드를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서, 논리를 이해하고 취약점을 분석하며 심지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능력이 인간 전문 개발자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능력을 쓸 운동장뿐입니다.
블록체인 진영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을 필두로 한 개발자 커뮤니티는 AI 에이전트가 뛰어놀기 좋은 디지털 운동장을 만들기 위한 핵심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래 세 가지가 있습니다.
- 에이전트 디지털 여권 개발: 신뢰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를 구별하기 위한 표준 신원 체계입니다. 인터넷에는 가짜 봇과 사기꾼 AI가 넘쳐날 테니까요.
- X4.0 프로토콜: AI가 다른 AI에게 정보를 요청하는 바로 그 순간, 아주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데이터를 즉시 받아올 수 있게 하는 실시간 결제 표준입니다. 이미 작년부터 구현되어 수만 개의 에이전트가 사용 중입니다.
- 온체인 결제 인프라 확장: AI 에이전트들이 24시간 멈추지 않고 데이터를 사고팔며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 대가로 이더리움 네트워크 수수료를 지불하는 구조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정말 이게 현실화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이더리움 기반 토큰화 펀드를 만들고, 글로벌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가 AI 에이전트를 위한 스테이블코인 결제 기능을 추가한 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들은 미래 경제의 주도권은 기계, 즉 AI 에이전트가 쥘 것이고, 그 기계들이 사용할 화폐는 달러가 아니라 암호화폐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출처: 블랙록).
지금까지의 인터넷 경제는 지구상 80억 인구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 경제가 본격화되면 한 명의 사람이 여행 준비 에이전트, 투자 관리 에이전트, 뉴스 요약 에이전트 등 목적에 따라 수십 개, 수백 개의 AI를 고용하게 될 겁니다. 시장의 잠재 고객이 80억에서 수조 개의 AI 에이전트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거죠. 이 수조 개의 에이전트들은 24시간 잠들지 않고 데이터를 사고팔며, 그 대가로 온체인 결제를 진행합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은 이 새로운 기계 경제(Machine Economy)의 가장 중요한 결제·정산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계 경제란 AI 에이전트들이 주도하는 자율적 경제 생태계를 의미합니다.
현재 이더리움 가격은 이러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아직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마치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화만 잘되면 되지, 손바닥 기계로 인터넷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했던 시기와 비슷합니다. AI라는 이름 아래 주식 시장과 안전 자산이 동시에 오르는 기묘한 장세 속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암호화폐의 가격은 역설적으로 매우 저평가된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인 블록체인의 가치는 재평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단기 가격에 일희일비하기보다, AI와 블록체인이 실제로 연결되는 사례들을 지켜보며 조금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이게 진짜 구조적 변화인지"를 제 경험과 비교하며 판단해 보려는 단계입니다. 물론 아직 실험 단계이고, AI가 대규모로 온체인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모습은 체감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 모바일 인터넷이 본격화되기 전, 스마트폰이 조용히 인프라를 깔던 시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의 인터넷에서 기계의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분기점 한가운데 서 있는 2026년, 디지털 자산을 다시 봐야 하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UE6lpQ_7co